당신과 나, 애증의 역사

  롤랑 바르트는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를 애도하며 2년 동안 일기를 써내려 갔다. 그는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 는 사전적 의미를 인용하였는데, 올해 10월 나 역시 어머니 추모 2주기를 맞게 된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눈물을 삼키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듯 울고 또 울었다고 생각했으나, 비통함과 참회의 눈물이 내 몸에 남아 있는 것은 아직도 차마 애도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 글은 내가 故 김용례 권사(본인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부터 여기저기 끄적거려 놓은 글과 사후 여러 달 여러 밤을 울면서 쓴 글들로 몇 회에 걸쳐 채워질 것이다. 쏟아 부었던 감정과 심정들을 가급적 수정하지 않고 내보내는 이유는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다소 거북하고 무례하더라도 이해하시기 바란다. 

롤랑 바르트나 김진영만큼 사유의 깊이가 턱없이 부족한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장담하며… 나의 몫을 채워 나가야겠다. 

『애도일기』를 번역한 철학자 김진영은 본인의 죽음을 앞두고 『아침의 피아노』라는 병상에서의 애도를 기록으로 남겼다. 롤랑 바르트도 김진영도 지금은 모두 이 땅에 없는 분들이다. 지금 아픈 그대들과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고 어두운 터널을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들. 피해갈 수 없는 생로병사를 겪을 우리들. 이 2종 세트를 함께 읽으면 좋겠다. / 프롤로그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어버린 슬픔을 기록한 롤랑 바르트의 에세이 '애도 일기'

그날 밤 내 어머니

  지상에 방 한 칸은 물론 땅 한 평도 없는 내 어머니. 오로지 그 가방만을 신주단지 껴안듯 손에서, 눈가에서 떼어놓질 못하신다. 대체 저 까짓게 무엇이라고... CT촬영하러 갈 때, MRI 찍으러 가는 응급실 병상에서조차 안달이시다. 

언젠가 외국에 나갈 일이 있을 때 공항면세점에서 그나마 값이 저렴하고 가볍기에 구입했던, 지금은 닳아서 허름해진 미국산 ‘레스포삭’ 그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젊은 의사의 소견을 듣고 밤늦게 6월 장마 속을 뚫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병원비 얼마 나왔냐고 대뜸 물으신다.

100만원 나왔다는 내 말을 들으시더니 아이고 어쩔끄나. 세상에... 그전에 찍던 사진허고 다르더니만 그렇게나 많이 나왔다냐며 그 가방에서 손지갑을 꺼내 노령연금 일부만 쓰고 모아놨다며 20만원을 건넨다. 당신의 전 재산을, 생애를 내민다. 그럴 필요 없다고 손사래 쳐도 소용없다.

  내일 모레 구순을 앞두고 지상에 방 한 칸 땅 한 평 없이 가운데 딸내미 집에서 이십년을 얹혀사신 내 어머니. 병실에 사람이 보고 있거나 말거나 그 입을 쩍 벌린 채 천정까지 보이며 깜박깜박 토막잠 주무시던 어머니. 

손가락 두 마디를 머리에다 가리키며 이삼일 전부터 이 속에 요만한 이상한 것이 있더니 왼쪽 얼굴 눈 주위로 입술 주위로 감각이 없으신 것 같다고, 사람들이 중풍끼가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당장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거들더란다. 

발이 허방 딛는 것 같으냐고 어지러워 죽겠느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그 정도는 아니라고 눈 주위도 입 주위도 살짝만 이상하다고 하신다.

애도의 철학자 김진영이 남긴 단 한 권의 산문집이자  유고집인 ‘아침의 피아노’ /

  장맛비에 뒤숭숭한 어젯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다. 돈은 좀 썼어도 뭔가 정리된 느낌이다. 우려했던 뇌졸중도 뇌경색도 혈관도 아무 이상이 없단다. 그러면 된 거다. 이래서 돈이 좋은 거다.

어젯밤 MRI 찍는 도중 촬영 기사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며 서너 차례 얘기하고 두어 번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까지 주의를 주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전에 찍었던 CT와는 영 다른 것이 비용이 꽤 나올 것 같아서 자식들 부담 줄 것 같아서 내일 모레 저세상으로 갈 상늙은이가 피 같은 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던 거다. 그래서 안 찍겠다고 소리도 지르고 몸부림도 치신 거다. 

지상에 단돈 100만원도 없으신 내 어머니. 응급실 저 너머에 비는 인정사정없이 쏟아지고, MRI 둥근 통속에서 발버둥을 치다 나오신 그날 밤 내 어머니. 오십도 다 넘은 자식들 걱정에 돈 걱정에 생병이 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형제지간에 싸움박질이나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 평론가 김미현이 쓴 추천 글이 자꾸 떠오른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일본의 감독이자 영화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누군가 보고 있지 않으면 몰래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누군가 보고 있기에 차마 버리지는 못하는 ‘뜨거운 감자’가 바로 가족이라는 의미도 된다. 

우리 인생에서 최후의 보루인 가족조차도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여전히 남아있는지 의심해 봐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